1. 통계학적으로 불가능했던 41분
1989년 7월 19일 오후 3시 16분, 콜로라도 덴버에서 시카고 오헤어로 향하던 유나이티드 항공 232편의 2번 엔진이 37,000피트 상공에서 폭발했다. 그 폭발의 파편이 비행기 세 개 유압 시스템을 동시에 끊었다. 보잉 엔지니어가 “우주 통계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던 사건이었다. 조종간을 움직여도 비행기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알 헤인즈 기장과 우연히 객실에 탑승했던 비행교관 데니 피치는 단 41분 만에 296명 중 184명을 살려냈다. 양쪽 엔진 추력 차이만으로 비행기를 끌고 간 41분, 그리고 마지막 1분의 결단을 추적한다.

2. 오후 2시 9분, 평범한 화요일 비행
그날 오후 2시 9분, 유나이티드 232편은 덴버 공항을 이륙해 시카고 오헤어로 향했다. 비행기는 맥도넬 더글러스 DC-10, 등록번호 N1819U였다. 기장은 57세의 알 헤인즈, 33년 비행 경력의 베테랑이었다. 부기장은 윌리엄 레코즈, 비행 엔지니어는 더들리 드보트였다. 객실에는 승무원 8명과 승객 285명, 모두 296명이 탑승했다. 비행은 순조로웠고, 오후 3시 16분 비행기는 순항 고도 37,000피트에 도달했다. 그 순간까지 모든 것이 평범한 화요일 오후의 비행이었다. 매뉴얼에 따른 정상 비행이 41분 후에 매뉴얼에 없는 비행으로 바뀌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3. 37,000피트의 폭발음
오후 3시 16분, 비행기 후미에 장착된 2번 엔진이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폭발의 원인은 엔진 내부 팬 디스크의 균열이었다. 그 균열은 18년 전 디스크 제조 과정에서 생긴 작은 결함이었다. 폭발 파편은 시속 800킬로미터로 사방으로 날아갔고, 그중 일부가 비행기 후미를 관통했다. 그 순간 비행기의 세 개 유압 시스템 라인이 모두 절단되었다. 보잉의 원래 설계는 세 개 시스템 중 하나만 살아남아도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날, 단 1초의 폭발이 세 라인을 동시에 끊었다. 조종간은 더 이상 비행기에 어떤 명령도 전달할 수 없었다.

4. 유압 0퍼센트, 매뉴얼이 없는 상황
조종실의 계기판을 본 부기장 레코즈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모든 유압 게이지가 0을 가리키고 있었다. 헤인즈 기장은 즉시 조종간을 좌우로 움직여 보았지만 비행기는 반응하지 않았다. 비행기는 천천히 오른쪽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동시에 고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행 엔지니어 더들리 드보트는 항공 매뉴얼을 펼쳐 “세 유압 동시 실패” 항목을 찾았다. 그러나 그 항목은 존재하지 않았다. 보잉이 “통계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매뉴얼에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매뉴얼이 없는 상태에서 296명의 목숨을 책임져야 했다.

5. 비행교관 데니 피치의 합류
그날 객실에는 우연히 비행교관 데니 피치가 일반 승객으로 탑승하고 있었다. 그는 유나이티드 항공의 DC-10 비행교관, 22년 비행 경력의 베테랑이었다. 폭발 직후 비행기가 비정상적으로 기울자 그는 즉시 자신의 신분을 승무원에게 알렸다. 승무원은 그를 조종실로 데려갔다. 헤인즈 기장은 그에게 단 한 가지를 요청했다. “양쪽 엔진의 추력 레버를 잡아 주세요.” 피치는 무릎을 꿇은 자세로 조종간과 좌석 사이에 자리 잡고 양손으로 1번과 3번 엔진의 추력 레버를 각각 잡았다. 그 순간부터 그가 비행기의 유일한 조종사가 되었다.

6. 차등 추력 비행, 매뉴얼에 없는 기법
피치는 1번 엔진과 3번 엔진의 추력을 각각 다르게 조절해 비행기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왼쪽으로 돌고 싶을 때는 오른쪽 엔진 추력을 늘리고 왼쪽 엔진 추력을 줄였다. 이런 “차등 추력 비행” 기법은 비행 매뉴얼에 없었으며, 어떤 비행기 시뮬레이터에서도 시도된 적이 없었다. 비행기는 거대한 곡선을 그리며 어쩔 수 없이 오른쪽으로 계속 돌았고, 매번 약 40도씩 기울었다 다시 평형으로 돌아왔다. 피치는 두 손으로 두 개의 추력 레버를 조작하면서, 헤인즈 기장과 끊임없이 의사소통했다. 마치 두 사람이 한 사람의 손을 가진 것 같았다. 후에 이 기법은 “피치 기법”으로 불리며 모든 대형 여객기 비상 절차에 추가되었다.

7. 수족 시티 게이트웨이 공항으로
관제센터는 가장 가까운 활주로를 가진 공항으로 아이오와 주 수족 시티의 게이트웨이 공항을 지정했다. 폭발 시점부터 비행기는 거대한 곡선을 그리며 그 공항으로 향했다. 41분간의 비행 동안 헤인즈 기장은 무전기로 객실 승무원에게 비상착륙 준비를 지시했다. 승무원들은 승객 285명 한 명 한 명에게 비상착륙 자세를 시연했다. 일부 승객은 자신이 살아남지 못할 것을 직감하고 가족에게 작별의 편지를 좌석 등받이에 끼워 두었다. 한 어머니는 22개월 된 아기를 무릎 위에 안고 있다가, 승무원의 조언에 따라 아기를 좌석 아래에 눕히고 안전벨트로 감쌌다. 그 1분의 결정이 후에 그 아기의 생사를 갈랐다.

8. 활주로 격돌의 마지막 1분
오후 3시 59분, 비행기가 수족 시티 공항 활주로에 접근했다. 차등 추력만으로 조종된 비행기는 일반 비행기보다 약 1.5배 빠른 시속 463킬로미터로 활주로에 진입했다. 더 결정적으로 비행기는 오른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오른쪽 날개 끝이 먼저 활주로에 닿았고, 비행기는 그 자리에서 회전하며 동체가 부서졌다. 동체는 세 조각으로 갈라졌고, 첫 조각은 옥수수밭으로 굴러갔고, 두 번째 조각은 활주로에서 불타기 시작했고, 세 번째 조각은 활주로 옆에 그대로 멈췄다. 그 첫 조각 안에 있던 35명은 옥수수 줄기 사이로 기어 나와 모두 살아남았다.

9. 184명의 기적과 112명의 작별
최종 생존자는 296명 중 184명이었다. 보잉 엔지니어가 “우주 통계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던 상황에서 184명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러나 112명은 그날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그중에는 어머니 무릎 위 22개월 아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어머니는 평생 자신을 책망했다. 그러나 헤인즈 기장은 후에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날 우리는 모두 살리려 했지만, 절반만 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절반조차도 기적이었습니다.” 살아남은 184명 중 일부는 옥수수밭 사이로 직접 기어 나왔고, 일부는 응급구조대에 의해 구조되었으며, 일부는 거꾸로 매달린 좌석 안에서 안전벨트만으로 살아남았다.

10. 알 헤인즈 기장의 이후
헤인즈 기장은 사고 후에도 비행을 계속해 1991년 정년 퇴직했다. 그는 평생 이 사건에 대해 강연을 다녔다. 그의 강연 제목은 항상 “5C”였다. 의사소통 Communication, 협력 Cooperation, 집중 Concentration, 자제 Composure, 그리고 운 Cooperation by luck. 그는 어느 강연에서도 자신을 영웅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는 항상 “피치 교관이 그날 그 자리에 우연히 있지 않았다면”이라고 말했다. 헤인즈는 2019년 별세할 때까지 184명의 생존자 중 다수와 매년 동창회를 가졌다.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그날의 41분은 평생을 살았던 시간보다 더 길었습니다.”
11. 데니 피치의 일생
비행교관 데니 피치는 사고 후 정신적 외상으로 한동안 비행을 그만두었다. 그러나 1년 후 다시 비행에 복귀해 유나이티드 항공에서 계속 근무했다. 그는 후에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우연이라면, 그날 살아남은 184명도 모두 우연이었습니다.” 그는 2012년 별세할 때까지 헤인즈 기장과 평생 친구로 지냈다. 그의 무덤에는 단 한 문장만 새겨져 있다. “그가 두 손으로 두 마리의 말을 다루었던 41분, 184명이 평생을 얻었습니다.”
12. 항공 안전 기준의 변화
사고 후 미국 연방항공청과 NTSB는 비행기 유압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안전 기준을 만들었다. 첫째, 세 개 유압 라인은 반드시 물리적으로 분리된 위치에 설치하도록 강제했다. 둘째, “모든 유압 동시 실패” 항목을 모든 대형 여객기 매뉴얼에 의무 포함시켰다. 셋째, 피치 기법이 모든 대형 여객기 조종사 비상 훈련에 추가되었다. 단 1분의 폭발 사고가 그 후 30여 년 동안 전 세계 모든 대형 여객기 설계와 비상 훈련을 바꾸어 놓았다. 사고 한 건이 바꾼 가장 큰 안전 기준 변화 중 하나로 기록된다.
13. 마치며: 41분이 던진 질문
1989년 7월 19일 오후의 41분은 184명을 살리고 112명을 잃었지만, 또한 전 세계 항공 안전의 기준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데니 피치가 그날 그 비행기에 우연히 탑승하지 않았다면, 보잉 엔지니어의 “통계학적으로 불가능”이라는 단언이 정말 통계학적으로 일어났더라면, 운명은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하나다. 우리가 우연이라 부르는 것이 정말 우연일까. 한 사람의 자리 선택, 한 사람의 자원 의지, 한 사람의 무릎 꿇은 41분. 이 모든 것이 평범한 화요일 오후를 184명의 평생으로 바꾸었다. 41분의 의미를 우리는 평생 다 이해할 수 있을까.